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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잠긴 경복궁 문은 누가 넘었나

려 두었던 보성 녹차 먹인 돼지 고기를 싸들고, 시청역서 내려 교보문고앞을 지나 경복궁길 너머로 걷는데, 잠긴 경복궁 출입문을 넘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정문앞에는 시동이 걸린채 라이트가 꺼져있는 검정색 구형 코란도 한대와 승용차 한대가 서 있었고, 문을 넘던 그 사람과 연관 있어 보인다. 경복궁 경비가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을거라 생각하고, 화장실을 가거나 볼일이 있어 들어 간 거라 생각하고 가던 길을 걸었다. 밤 10시가 가까운 시간이었고, 포근한 날씨탓에 삼청동서 걸어 나오는 연인들이나 아가씨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침 공연이 끝난 시간에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주인내외께 갖고 온 고기를 건내 드리고 한쪽 자리에 앉는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던 몇몇의 손님들마져 하나둘 떠나고, 주인께서는 오래 묵은 냄새 가득한 치즈조각과 스페인산 와인 한병을 들고 오신다. 고요함만이 남은 공간에서 주인어른과 10여년전 기억들을 나눈다. 카페의 주인이 다른 분이였을때, 삼청동은 컴컴하고 한적한 고즈넉한 동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의 주인분을 따라서 10여년전 이곳을 처음 찾았고, 와인과 째즈와도 익숙하게 되었다. 고 김대환 선생께서 살아생전 가게앞에 할리 데이비슨을 세워두고, 흑인 피아니스트 제시와 함께 열혈연주를 펼치셨고, 놀러오신 장사익선생과 즉흥적으로 한바탕 노시던 모습도 선하다. 장사익 선생께서는 요즘도 가끔 방문 하셔서 한쪽에 잠시 앉아 계시다 가시곤 하시는데, 일부러 아는척 하지는 않는다. 이곳 주인께서도 그분들께 방해가 안되도록 배려 하시는 편. 이러저러한 추억들을 나누며 어느새 와인 두병째, 남은 치즈는 한통을 다 비워낸다. 한쪽 공간에 비상구를 내는 문제로 며칠간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며, 속상한 속내도 털어 놓으신다. 담소를 나누다 일어서니 벌써 새벽 1시. 가게 불을 끄고 길건너 작은 카페에서 2차로 맥주를 나눈다. 음악가라는 이곳 주인은 어색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몰려드는 손님맞이를 하고 우리는 분주한 틈을 타 빠져 나온다. 지나는 차들도 뜸한 총리공관 앞에서 택시를 기다린다. 밤내음는 벌써 봄이다. 그나저나 아까 잠긴 경복궁 문을 넘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신고라도 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