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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드리블 할때 네 눈을 보면

드리블 할때 네 눈을 보면 어디로 갈지 정말 모르겠거든

확철이 지난탓인지 해가 바뀐탓인지, 한동안 동네 가게에서 주문, 구입해 먹던 여주 밤고구마 가격이 오르는 바람에 온라인서 거의 반값에 구입한 광주 고구마는 생각보다 작았다. 여주 고구마는 크기도 크고 씻겨 나온덕분에 물붓고 삶아서 먹으면 됐는데, 새로산 고구마는 흙을 씻어야 하는 불편함과, 작은 크기탓에 여러개를 먹어야 든든하다.

준비해둔 작은 고구마 상자를 담은 쇼핑백을 들고 트래이닝복 차림으로 지하철을 탄다. 시청역에 도착했을때는 아직 밤 10시가 안된 시간. 지나는 사람들 사이로 터벅터벅 걷는중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의 잭 니콜슨이 떠오른다. 사람들을 이리 저리 피하며 조심스럽게 걷던 모습이 인상적이던 영화. 사람들은 다들 즐거운듯 웃으며 지나는데, 무슨일인지 길가엔 전경들의 경비가 삼엄하고, 집회가 있었는지 공원입구를 전경들이 지키고 있다. 한가로운 일요일 저녁과 달리, 월요일 밤 삼청동 길은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며 뿜어대는 매연으로 짜증난다. 불꺼진 어느 갤러리의 조각상은 마치 유령 영화에나 나올법한 표정으로 째린다. 카페에는 월요일 밤임에도 손님들이 꽤나 많은 편. 주인은 쟁반을 들고 나오며 맞아주신다. 고구마를 건내고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있자니, 잠시후 주인은 묵은 치즈와 화이트와인을 내놓으신다. 보름 넘도록 내부공사를 했던터라 오랫만에 들린 셈. 피아노가 있는 무대 뒷쪽에 새로 생긴 비상구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먼지를 제거하고 새로 꽂은 오디오와 비디오는 한결 나은 퀄리티를 보여준다. 공연이 없는 무대에는 지난번 함께 했던 일행이 주인께 선물한 *Buena Vista Social Club DVD가 프로젝트빔을 통해 보여지고 있다. 작은 극장에 앉아 술마시며 보는 듯 착각에 빠지고, *빔 벤더스 감독의 저 타이틀은 수차례 봤지만 여전히 멋지다. 주인도 질리지 않는다며 칭찬하신다. 1시가 가까울때쯤 하나둘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난로가에 앉아 두병째 와인을 비우는 중이다. 10여년전, 잘나가던 직장을 접고 몇차례 고배를 마시며 상심의 세월을 보내다 시작한 지금의 일에 제법 익숙해지신 주인은 현재에 어느정도 만족하시는 듯 보인다. 아직 목적지는 멀지만, 늦은 연세에 새로 맞은 삶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고, 새로운 것들을 가져다 준 모양이다. 첫맛과 끝맛이 다른 와인이 바닥을 드러낼때쯤, 근처 국밥집에 앉아 막회와 함께 마시는 조껍데기술은 달착지근하니 취기를 올려준다. 삼청동서 유명한 어느 기인(?)께서 썼다는 요상한 글씨들이 눈에 들어온다. 좀전에 길거리를 술취한채 방황하던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바로 그 기인이란다. 주인과 헤어지고 어두운 삼청동 길거리서 노상방뇨를 즐긴다. 십여년전부터 삼청동 길거리서 즐기던 나쁜놀이. 삼청동을 걷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 냄새나는 흔적들을 밟고 다니는 셈. 유치한 장난에 슬쩍 쌩웃음 터지고, 구름한점 없는 밤하늘엔 멀리서 반짝반짝 별들만 손짓해온다. 또 하나의 *초원방분의 전설이라고나 할까?

덧1) 사진을 정리하다 설연휴에 동네학교에서 찍은 어느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드리블 할때 네 눈을 보면 어디로 갈지 정말 모르겠거든'이라는 카피와 저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덧2) 봄날처럼 따스한 덕분에 산책로엔 전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아이부터 노인, 부부, 가족들까지... 작은 산봉우리 세개를 넘어 오는 길이 이젠 좀 쉬운듯 하니, 거리를 좀 늘려서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다녀야 할 모양이다. 고구마 먹고 산책을 하니 늘어 나는것은 응가와 쓸곳없는 스태미너인듯.


설날에 찍은 식탁위의 딸기 설날에 찍은 식탁위의 지짐들

위 사진들은 본문 내용과 무관하며, 설날에 찍은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