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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새 운동화

지리도 가난하던 어린 시절 내 운동화는 2,500원짜리 까만 운동화였다. 까만 교복 입고 학교 다니던 형님들이 신던 옛날 운동화. 나이키와 아식스를 신고 다니던 아이들 운동화를 보면 부끄러워 숨기고픈 못난이 운동화. 책 보자기와 까만 운동화가 가난의 상징인 양, 도시락도 못 싸고 영양실조에 시달려야 했던 생활이 싫어 도망치고 싶던 때. 그 까만 운동화가 없어서 못 신는 아이들도 있었겠지만, 르까프와 프로스펙스는 한 번쯤 신어 보고 싶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세상도 많이 변했지만, 아직 구두보다 운동화를 더 좋아한다. 기술이 좋아져서 신었는지, 벗었는지 헷갈릴 만큼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다니게 되었다. 어린 시절 마땅한 운동화가 없어 축구시합 할 때마다, 발가락이 깨졌던 기억 탓일까? 새로 생긴 마트에서 발견한 3만 원짜리 흰색 축구화를 보고 덥석 사버렸다. 누구에게 3만 원짜리 축구화 따위가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이제껏 3만 원이 넘는 운동화를 신어본 적 없다. 신발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릴 적 신던 2,500원짜리 까만 운동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탓이라 핑계 대본다. 새로 산 하얀 축구화는 저편에서 오버랩되는 까만 운동화와 함께, 지겹던 가난을 상기시킨다. 힘들고 고단하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것은 곧 나를 다스리는 가치이기도 하다. 어느 성공한 부자라도 힘들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 추억을 되새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이는 자장면을 끼니마다 챙겨 먹고, 또 어떤 이는 어렵던 시절, 억지로 삼키던 싸구려 샌드위치를 하루에 한 번은 챙겨 먹는단다. 내 것은 아니지만, 값나가고 비싼 것을 누려봐도 취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비싸고 호사스러워도 그것이 생활에 불필요한 것이면 쓰레기나 다름없는 것을 느껴서일까? 내 처지에 호사스런 것들은 불필요한 사치일 뿐, 생활에 편리한 것이 제격이다. 티 나는 호사는 누리고 싶지 않다. 가치 있고 차분하며, 꼭 필요한 사치라면 몰라도 만약 아니라면, 빈 껍데기나 다름없는 것. 성공이란 먼 이야기지만, 여전히 까만 운동화는 잊히지 않는다. 선택보다 포기를 먼저 배워야 했고, 죽도록 먹기 싫던 수제비와 함께 오랫동안 떠올리며 살아야 할, 발등 위에 지우지 못할 문신 같은 추억의 까만 운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