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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젖다

만에 뒷동산에 올랐다. 2주 넘게 퍼마신 알콜 덕분에 숨이 막히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시원한 물로 머리 감고 싶을 만큼 땀이 쏟아진다. 비를 피해 2주 넘는 시간을 페인트칠하느라, 끼니 거르며 소주 한두 병씩 비웠다. 담배라도 태우면 핑계 삼아 쉴 텐데, 그럴새 없이 담벼락에 매달려 지냈다. 덕분에 땀과 함께 살이 쪽 빠지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허리 쑤셔 술 없이 잠을 못 자고, 어렵게 붙인 약간의 근육까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짬짬이 팔굽혀 펴기, 아령 질을 했는데, 다니던 뒷동산을 못 가니 허전하던 차였다. 부실해진 근육을 좀 메워볼 생각으로 지난밤, 일부러 맥주에 닭고기를 먹었다. 잔뜩 구름 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운동하기 좋은 때다. 녹음이 우거진 뒷동산은 여기저기 물병 차고 기어오르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막 소변을 보고 난 강아지가 내 종아리를 핥는다. 암컷인가?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쉼터까지 내달리니 혀가 마른다. 물 한 모금 축이다 내뱉고서, 갖춰진 가벼운 역기와 철봉 따위에 몇 차례 매달리다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체력 단련장도 회원제로 운용하다 보니, 눈치 보여 못 들어가겠고, 그 옆 간이 운동시설에서 와이어 당기기와 다리 운동, 약간 무거운 역기를 들고나니 옷이 다 젖는다. 여벌로 가져간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엔 수건을 두르고 되돌아 내려와 가게에서 이온음료 한 병을 들이키니 좀 살 것 같다. 천 원 채소 가게에서 사다 먹던 고구마도 다 먹었고, 통밀빵은 한동안 안 먹는 중이고, 식전이라 배도 고팠다. 집으로 돌아와 파란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 밥과 함께 침을 섞어 씹으니 꿀맛이다. 저만치 한없이 34층, 35층을 향해 높아져 가는 아파트 덕분에 시야가 엉망으로 변해간다. 언젠가부터 이 도시는 대단위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인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거기 있던 논밭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주변 야산도 사라졌고, 스카이라인도 끔찍하게 바뀐다. 겨울에 불어댈 바람과 쉽게 녹지 않을 길바닥을 생각하면 벌써 걱정이다. 무분별한 개발이 못내 아쉽다. 자연과 함께 하는 개발을 해야 하는데,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아파트를 지어도, 집을 지어도 숲 속에 지은 듯한 유럽 어느 도시들이 부럽다. 머지않은 장래에 이 도시는 고층건물과 고층 아파트가 가득해 햇볕 들지 않는 축축한 도시로 변할 모양이다. 일순간 땀으로 젖은 상쾌함이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노래 : *한대수 - 바람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