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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Swiss Army Knife

Victorinox Swiss Army Knife

난 1993년 유럽출장중, 쮜리히에서 싼맛에 구입해 친척과 선배에게 선물하고 남은 * Victorinox Swiss Army Knife. 손잡이 부분이 파손되고, 온갖 흠집과 먼지를 뒤집어 쓰며, 수년간 드라이버와 병따게, 깡통따게및 종이를 자르는 등 생활속에서 필요할때마다 유용하게 사용했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 함께 할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10여년을 훌쩍 넘겼구나. 앞으로도 많은 도움을 부탁한다.


위스 아미 나이프는 잘 알려진 것처럼 ‘맥가이버’라는 TV외화 시리즈에 의해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초기에는 낚시나 등산가 등의 일부 전문인들에 의해 사용되다가 요즘에는 배낭여행의 필수품으로, 선물용으로 많은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생각해보면 과거 우리나라에 진짜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판매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요즘은 대형 할인 매장 어디에나 쉽게 볼 수 있으니 그 대중화됨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 할 수 있는 스위스 아미나이프는 종종 진짜, 가짜 논쟁에 휘말리곤 하는데, 빨간 몸체에 십자무늬는 맞지만 십자가의 테두리가 둥그스름한 사각의 형태를 지닌 것과 방패모양을 지닌 것의 두 종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짜고 가짜고가 아닌 분명 둘 다 진짜 스위스 아미 나이프가 맞다.

때는 19세기, 스위스는 유럽의 가난하고 작은 나라 중에 하나였다. 실업으로 인해 많은 사람 해외로 이주 하게 되자 칼 엘스너(Karl Elsener)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장을 세웠고 마침 스위스 군이 제식장비로 칼을 요구하자 ‘스위스 군에는 스위스 인이 만든 장비를’이란 모토를 가지고 칼을 만드는 25명의 장인들을 모아 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로 빅토리녹스의 원조인데 하지만 독일의 공장에서 더욱 낮은 가격으로 칼을 생산하게 되어 칼 엘스너의 사업은 난항을 겪게 된다. 하지만 캔오프너와 드라이버 등의 6개의 도구를 포함한 칼을 생산, 결국 1897년에 스위스 군에 정식 납품을 하게 된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스위스의 프랑스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인 주라(Jura)지방에서도 장인 들이 모여 군에 납품하는 칼을 만들기로 하고 1901년 군에 납품을 시작했다. 이들은 바로 웽거 나이프의 원조다. 칼 에스너가 납품하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의 납품량 말고도 아직까지 독일에서 일부 수입을 했었던 스위스군은 이제 웽거의 칼을 납품 받으면서 국내 생산만으로 공급량을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업체에게 어떤 비율로 공급을 받아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여러나라의 언어를 쓰는 스위스의 특성 때문으로 전 국민 60%의 독일어 사용지방의(빅토리녹스의 생산지) 비중을 늘리자면 20%의 프랑스 사용지역(웽거의 생산지)이 반발할 터이니 공급비율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스위스정부는 고민 끝에 정확히 반반씩을 공급받기로 하면서 스위스 국기를 모태로 한 마크를 사용하던 두 업체에게만 십자 마크를 사용하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웽거는 1907년에 공장장이었던 테오 웽거(Theo Wenger)가 회사를 인수하며 웽거가 되었고, 빅토리녹스는 칼 에스너의 어머니 이름이었던 빅토리아(Victoria)가 죽자 빅토리아의 이름과 스테인리스 강철을 뜻하는 이녹시데이블(inoxydable)을 합성해 빅토리-녹스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스위스 아미 나이프’라는 공통의 명칭으로 회사간에 분란이 일어나자 협정을 통해 웽거는 ‘제뉴인 스위스 아미 나이프(Genuine Swiss Army Knife)’, 빅토리녹스는 ‘오리지널 스위스 아미 나이프(Original Swiss Army Knife)’라 부르게 되었다. * 내용출처 : buy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