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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눈 치우기

눈 치우기 - 신귀백


사흘째 눈이 내렸다.
엊그제 내리던 싸락눈은 닥터지바고의 눈이었고
어제 밤까지 쌓인 눈은 나라야마부시코의 눈이었다.
발목까지 눈이 차올랐다.

눈이 그치고 하늘이 파랗다.
가을에 전지를 해서 몸집을 가볍게 한 나무들은 눈을 별로 얹지 않았다.
눈 온 다음날은 금방 어디가 북인가 바로 알 수 있다.
나무에게는 몸 뒤쪽 거기가 북이구나.
저 무덤 햇볕 녹지 않는 쪽이 北인 것이다.

눈을 치우기 전에 눈 위에 서 본다.
시냇물에 서 있던 때처럼 발뒤꿈치부터 서늘해진다.
눈치우기,
일년 혹은 몇 년 만에 한 번 있는 일이기에
치우기도 해야지만 아깝기도 한 것
저것들이 며칠 내린 것들인데

벤치에도 눈이 소복이 아니 수북이 가슴만큼 쌓여있다.
벤치위의 눈 위에 앉아 본다. 곧 눈 의자가 된다.
맞춤의자지만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다.
일어난 자리에 내 몸피만큼 쑥 들어가 있는 눈 의자

눈을 치운다.
삽과 밀대의 동그란 나무 손잡이는 내 손 안에 쏙 들어온다.
밀대로 눈을 밀어보지만 몇 발 못가 뭉쳐진 눈들은 더 나가길 거부한다.
눈삽으로 우선 길은 튼다.
길을 튼 뒤 밀대로 민다. 땀이 난다.
키 큰 나무가 서 있는 곳은 난공사다.
삽으로 눈을 깬다.
세상에 저렇게 한 잎 한 잎 날리던 것들이
응달 아래 것들은 이렇게 뭉쳐서 옴싹달싹 안하는 구나.
삽날로 한각 한각 떼어낸다.


보충수업 나왔네.
고흐의 국화꽃 같은 오베루 교회에 떠있는 별
그림자 없는 노란 침실의 침대 보러 갈날 있을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