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ing to fight, and nothing compares to it.
1987년 우리나라에 민주화열기가 고조되고 있던 그시기에 미국의 대중음악계는 신선한 개혁의 바람을 주도하는 두 명의 신예를 맞이한다.
한 사람은 미국 자체가 내놓은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이었고, 다른 한 명은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시네드 오코너(Sinead O`connor)였다. 이 두 명의 팝가수는 아무 것도 전하는 것이 없는 공허한 레코드가 범람하는 시대에 저항정신이 투영된 노래와 행위로써 '거대한 공룡' 미국에 도전을 감행한다.
미국 팝계에 이들의 등장이 가지는 의미는 80년대 내내 보수화의 깃발을 내걸고 거침없는 항해를 하던 미국함대에 암초로 나타나 치명적 일격을 가했다는데 있다. 두 사람의 출현과 동시에 사회의식을 노래하는 가수와 그룹들이 붐을 일으켜, 팝계는 허구한 날 몸을 흔들어대도 사랑타령이나 일삼는 '순종과 상업성'의 무대라는 인식을 깨고 엄연한 투쟁의 무대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두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같은 개혁파의 물결은 세기를 넘겼거나, 아니면 아예 기대할 수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실로 80년대 팝계는 암흑의 시대였다. 좀처럼 시대와 사회의 상황을 노래하는 가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면 그런 가수가 있었지만 일반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큰 흐름(보수적 물결)에 휩싸여 묻혀버렸다는게 좀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60년대와 70년대초까지 팝계는(월남전이라는 확실한 상황이 뒷받침되긴 했지만) 봅 딜런, 존 바에즈, 존 레논, 봅 말리 등 훌륭한 '시대의 양심'을 상당수 배출했다. 그러나 갑자기 70년대 중반을 고비로 영미로 대표되는 팝계에서는 더 이상 사회현실을 고발하고 개혁을 지향하는 리얼리즘계열의 노래를 접할 수 없게 되었다. 70년대 말 미국의 경우 지배계급과 체제의 반대세력으로 위치했어야 할 흑인들의 음악은 섹스와 춤이 극단화된 디스코(비지스, 도나 섬머를 기억하는가)의 수렁에 빠져 버렸다. 그 당시 영국은 기존질서의 전면적 파괴를 노래한 펑크음악 - 아티스트로는 '클래시'나 '섹스 피스톨즈'가 대표적이었다 - 이 유행하긴 했지만, 국제문화교류를 독점하는 미국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수입을 차단하는 바람에 '물결'을 조성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존 레논의 암살과 함께 맞이한 80년대의 팝계는 자유보다는 더 많은 빵을 요구하는 경향이 노골화되었다. 오로지 상업성만이 최고의 가치로 부각되어 댄스뮤직이나 시시콜콜한 사랑노래가 판을 쳤다. 아무리 노래가 시대의 반영이라고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레이건 시대가 열리면서 보수주의자들이 창궐, 우익의 성향이 전면화된 것과 어쩌면 그리 맥이 잘 통하는지...
그 와중에 '드릴러' 마이클 잭슨과 '섹스 폭격기' 마돈나가 슈퍼스타로 등장했으며 미국은 - 존 레논을 문화게릴라로 단정하면서 활동을 방해할 만큼 사회성 음악을 경계하는 그 미국은 - 먹고 춤이나 추자는 식의 이들 노래를 적극적으로 전세계에 수출했다. 마돈나는 미국만의 스타가 아니라 월드스카가 됐으며 세계 유행음악은 미국의 팝송 그 자체였다.
이런 추세는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끝난 뒤 피크에 달했다. '미국 제일(America First)'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신애국주의가 팝계에 몰아친 것이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빅히트작 '미국에서 태어나'가 불을 당긴 신애국주의는 존 쿠커, 프린스 등 톱가수들이 가세 한동안 크게 위세를 떨쳤다.
그러면 60년대의 영웅 봅 딜런과 포크 뮤직으로 상징되는 음악계의 민주진영은 어떠했는가. 통기타와 프로테스트송의 노래로 민권운동의 정신과 젊음의 양심을 이끌어온 봅 딜런은 더 이상 리얼리즘 가수가 아니었다. 현실부정과 비판과는 등을 돌린 채 종교를 통한 자기탐구에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었다. 70년대 초반까지 그토록 많이 등장했던 혁명이란 낱말이 구시대의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달이 차면 기우는 법, 레이건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는 87년쯤 드디어 팝계의 비판문화는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현실을 노래하는 가수들이 부쩍 늘어났으며 포크음악이 되살아났다.
이 같은 혁명이란 말이 잊혀진 상황에서 혁명에 대해 얘기하고자 분연히 일어선 선두주자격인 가수는 미국의 흑인 여가수, 트레이시 채프먼이였다.
'그들이 혁명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지 당신은 아는가. 소근거리고 있지. 복지수당을 받으려고 서있으면서, 그러한 구세군의 문턱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나 자신소유분을 가지려 하고 있어.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나 자기 것을 쟁취하려 하고 있어' '혁명에 대해 얘기하며(Talking about a revolution), 국내 금지곡'
이제 트레이시 채프먼에 의해 혁명이란 말은 공식복권됐다. 자본주의와 경제적 독점의 나라 미국은 사회내부의 모순을 들춰내면서 혁명을 예감하는 가수, 더구나 흑인가수를 접하는 위협에 처한다.
이런 위협은 내부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밀어닥쳤다. 외부의 위험인물은 아일랜드산의 시네드 오코너였다. 까까머리의 여가수는 공공연히 영국의 대처수상을 욕되게 발언을 하더니 서서히 공격대상을 미국으로 바꾸어 새로운 소용돌이를 일으킬 채비를 갖추어 나갔다.
노래 '예루살렘'을 통해 자본주의체제를 합리화시켜주는 이념적 도구 기독교의 위선을 슬그머니 지적하고 '전쟁에 앞서 술이나 마시자'는 과격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여가수의 87년 데뷔음반은 미국에서만 놀랍게도 50만장 이상이 팔려 나갔다.
미국은 내외의 위협에 직면하게 됐다. 자기나라 트레이시 채프먼과 외국의 시네드 오코너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은 한층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두 사람 모두 여자라는 점은 아무래도 여성이 남성보다 기존질서의 변화를 원치않는 보수적 성격이 강하다는 인식과 반대되고 더욱이 팝계의 경우는 여성들의 반란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적지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강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이니라!).
두 여성은 노래작업을 운동의 의미에서 전개시켜 나가는 노선의 일치외에도 유사한 부분이 많다. 우선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여 현재까지 각각 2장의 앨범을 발표, 보조를 맞추고 있다. 시네드는 충격적인 데뷔작 <사자와 코브라(Lion And Cobra), 국내에는 미발표> 이후 90년에 세계적인 히트음반으로 떠오른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원치는 않아요(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를 냈다. 트레이시는 88년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한 데뷔앨범에 이어 잇따라 이듬해 <교차로(Crossroads)>를 출반했다.
두 여성은 또한 엇비슷한 지명도 만큼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을 예로 든다면 지난해 3월 19일자에 트레이시를, 4월 16일자에 시네드를 각각 특집기사로 다루고 있는데 트레이시를 “백마일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들려나오는 것 같은 풍부한 저음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는 목소리”라고 격찬하면서 목소리, 기타 그리고 양심만으로 무장하여 프로테스트송을 다시 융성하는데 공헌했다고 쓰고 있다. 시네드는 “누군가 기다리는 어두운 방을 향해 꾸불꾸불한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고 유혹적이며 약간은 음산한 목소리”라고 평하면서 그녀를 '이 시대의 팝의 가장 뇌리를 떠나지 않으며 있음직하지 않은 스타'라고 칭송해 마지않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도 두 여성의 각별한 공통점은 - 이 점이 두사람 음가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 모두 가난한 집에 태어난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고 성장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트레이시는 4살 때, 시네드는 8살 때 부모가 각각 이혼, 모두 편모 슬하에서 이른바 '결손가정'의 딸로 자라난다. 둘은 머리가 깨이면서 서서히 자신들의 불행이 단순히 부모의 이혼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부모의 이혼을 야기시킨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가져온 부산물임을 인식하고 모든 분노와 열정을 음악에 농축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이 병든 사회의 유일한 구세주는 정부나 종교가 아닌 '더불어 함께 살아가게 할 수 있는 매개로서의 사랑'임을 확인하고 이것을 엄마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구체화시킨다. 트레이시는 89년 2월 그래미상 시상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기타를 사주시고 지금도 비평가의 역할을 해주시고 있는 어머니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수상수감을 밝히면서 모든 공을 엄마에게 돌렸다. 시네드는 아예 첫 앨범을 엄마에게 바쳤으며 사랑을 통한 치유를 더욱 확산시켜 두 번째 앨범은 그토록 미워하던 아빠에게 바쳤다.
올해 25살인 트레이시 채프먼은 미국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그녀는 인구 대부분이 흑인이고 당연히 노동자계급으로 구성된 동네에서 엄마, 언니와 함께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간다. 남편과 이혼한 트레이시의 엄마는 크레이시가 집에 있을 때 항상 라디오를 틀고 마빈 게이류의 리듬 앤 블루스(흑인의 대중음악)를 즐겨 들었는데 이같은 음악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딸에게 유전되어 모전여전을 입증한다.
딸의 음악적 재능을 간파한 엄마는 딸이 원하는 드럼을 선물해주려고 했으나 너무 소란스러울 것을 염려, 대신 20달러짜리 기타를 선물해준다. 이 통기타는 그녀의 관심(『롤링 스톤』지 인터뷰에서 트레이시는 “나는 항상 사회적 조건과 정치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늘 엄마는 나와 제반 관심사를 토론하곤 했다”고 밝히고 있다)을 표현해주는 무서운 도구가 된다.
당시 미국은 인종차별을 없앨 목적으로 공립학교의 흑인과 백인 학생수의 비율을 똑같이 하려고 학군내의 학생을 분산, 재배치하여 강제적으로 통학시키려는 시도가 실행되고 있었고, 이에 반발하는 백인보수파들이 소란을 일으켜 흑백대결이 첨예화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코넥티컷주의 우스터고교에 입학한 트레이시는 처음으로 백인의 상층 계급자손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고 자신이 소외받고 있는 피지배계급, 그리고 흑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많은 백인학생들이 너무도 어리석은 질문을 나에게 해왔다. 그들은 전에 가난한 사람을 전혀 만나보지 못했던 애들이었다. 수도 없이 '인종주의(racism)가 무엇이며, 흑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16살인 이즈음 그녀는 벌써 백인 지배의 세상은 혁명을 통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고 '혁명에 대해 얘기하며'를 작곡해 부를 정도였다. 이에 메사추세츠주 메드포드의 터푸츠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면서 저항음악의 장르인 포크에 음악방향을 세우고 포크가 융성하던 보스톤의 케임브리지포크서클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영웅탄생을 예고한다.
일렉트라레코드사와 계약하면서 봅 딜런의 매니저였던 엘리옷 로버츠가 그녀의 매니저를 맡았으며 로버츠의 예언(“지금은 자극을 요하는 시대이며, 난 트레이시가 그런 시대의 선두주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대로 트레이시는 하루아침에 포크의 히로인으로 떠오른다.
트레이시는 미국이란 나라가 백인이 지배하는 물질 만능의 세계임을 직시하고 있었다. 흑인을 하층계급으로 억압, 유지하여 백인이 지배계급으로 군림하는 자본주의라는 것을. '넌 물질세계의 환상에 사로잡혀있지. 그것이 피를 묶는 쇠사슬인지 모르고 말야. 그것을 상층으로의 이동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넌 강물에 내던져진 거지. 또다른 노예제의 형태야. 모든 인공의 백인세상이 너희 주인이란 말야' '물질세계(Material world)'
트레이시는 빵과 자유를 모두 제공해주어 인민의 삶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의 대국 미국에 어찌하여 가난한 사람, 억압받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상황을 <교차로> 앨범에 수록된 '하위도시(Subcity)'라는 멋진 낱말을 만들어 총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람들은 언더그라운드에 하나의 도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하지. 그 곳에서 사람들은 쓰레기와 부패더미에서 동료들을 버려가며 매일 살고 있지. 이 하위도시에서의 삶은 정말 벅차. 우린 정부의 어떤 구제도 받을 수 없지. 사람들은 우리가 틈에 떨어진 것이며 체제는 가동된다고들 하지. 하지만 우린 그렇게 여기지 않아.'
이런 세상은 평등과 공동체의 세상으로 변해야 되고 그 방법은 혁명이라는 것을 트레이시는 예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지금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지금이 아니라면 그럼 언제. 오늘이 아니라면 언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지. 새날을 기다리지. 기다리기만 하면 곧 딱하게만 되는 거야. 우린 항상 느끼며 항상 생각하며 우리 삶을 살고 있는 거야. 때는 다가왔어' '지금이 아니라면(If not now)'
트레이시는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가지고도 진보세력에 억압적인 미국사회에 '포크송 르네상스의 첨병'으로서 자리매김을 했다. 가슴속에 단비를 만난 듯 팝 팬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은 그녀의 데뷔작이 1천만장 이상, 두 번째 앨범이 2백만장 이상의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리도록 했다. 그리고 그래미상부분에서 최우수 신인아티스트부문을 포함, 3개부문을 석권했다.
이와 같은 트레이시의 쾌거에 한치도 뒤지지 않는 성공을 시네드 오코너도 이끌어 냈다. 시네드의 두 번째 앨범은 광풍을 일으켜 여기에 수록된 곡 '아무 것도 당신에 비할 수 없어요(Nothing compares to you)'는90년 말 빌보드가 집계한 넘버원 월드와이드싱글로 선정됐다.
트레이시가 흑인답게 성별분간이 어려울 만큼 박색인데 반하여 시네드의 외모는 젊은 시절의 오드리 헵번을 연상시키는 탁월한 미모를 지녔다는 게 인기의 원동력이 됐다. 정작 시네드는 이것이 싫어서 '흉칙하게 보이려고' 삭발을 했다지만 빡빡머리 여가수라는 점이 오히려 화제를 유발, 그녀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삭발을 감행하는 자세에서 엿볼 수 있듯 시네드는 강렬한 개성의 소유자이다. 긍정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의미에서의 개성이다. 2집 앨범에 수록된 '황제의 새옷들(The Emperor`s new clothes)'이란 곡에서 그녀는 '난 단지 스물 한 살 밖에 안됐는데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겠어?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충고하고 이렇게 돼야 한다고 말해주더군. 하지만 그들은 왜곡돼 있어. 결코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야'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그녀의 강한 자의식이 반영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분단, 폭동, 전쟁의 나라인 아일랜드의 반항기질인지도 모른다. 아일랜드의 심장을 지닌 데다 불우한 어린 시절이 가져온 퍼스낼리티가 화학적으로 혼합돼 시네드는 권위체제에 맨몸으로 엉겨붙는 공격적 자세로 일관하게 된다.
더블린태생의 시네드는 부모가 격렬한 다툼 끝에 (어렸을 때 부모가 싸우는 것은 전쟁보다 무서운 법이다) 갈라서는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아 비정상적인 행위만을 일삼는 비행소녀로 전락한다. 학교를 밥먹듯 빼먹고 심지어 소매치기까지 하여 소녀감별소에 갇히기도 한다. 그녀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어머니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때, 어머니를 보지도 못했을 정도로 시네드는 거의 2년간 방황을 계속했다.
그녀는 비참한 자신, 잘못돼 있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못견딤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런 감정을 데뷔작에 그대로 담아낸다. 음악과 별도로 장외에서 시네드는 아일랜드를 이토록 짓밟아 놓은 자본주의의 원조 영국을 공격하고 조국의 해방투사조직인 아일랜드 공화군(IRA)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하여 일대 주목을 받는다.
'오토바이를 탄 흑인소년들(Black boys on Mopeds)'이란 곡에서 시네드는 이렇게 그리고 있다. '대처수상이 TV에 나와 천안문 대학살에 충격을 받았다더군. 자신도 똑같은 명령을 하달하면서 심기가 안 좋다니 이상하기만 해. ... 영국은 마담 조지와 장미의 신비한 나라가 아냐. 오토바이를 탄 흑인소년들을 죽이는 경찰의 고향이지'
이 곡은 니콜라스 크램블이라는 흑인청년이 친구에게서 오토바이를 빌어타고 다니는 것을 경찰의 절도행위로 오인, 추격전을 펼치다가 크램블이 부딪쳐 사망한 런던에서 일어난 실제사건을 테마로 하고 있다. 사건 후 경찰은 이를 완전히 모른 체 하기로 결정하는 오리발식 처리를 했다. 시네드는 이 노래와 관련, 영국의 『페이스』지와의 인터뷰에서 “흑인들이 얼마나 혹독한 처우를 받고 있는가 런던에 살면서 난 똑똑히 목격했다. 이 곳은 흑인을 마치 쓰레기처럼 취급한다. 잉글랜드에서는 영국인이외에는 전부 쓰레기취급 당한다”고 밝혔다.
시네드는 지난 해 미국정복에 나서면서 분노의 타킷을 영국에서 미국으로 전환시킨다. 미국은 영국보다 '보이지 않지만 더욱 심하게' 소수민족과 여성을 억압하는 나라가 아닌가.
시네드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이기만 한, 미국의 연예계에 일련의 거부시리즈를 연출, 시네드 대 미팝계의 대결 양상을 끌어낸다. 먼저 5월 인기방송 '새터데이나잇 라이브'에 출연섭외를 받지만 이 프로의 진행자 앤드류 다이스 클레이가 코미디를 가장해 소수민족과 여성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절한다.
9월에는 뉴저지주 가든주립예술관공연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되면 공연을 중단하겠다고 버터 주최측의 굴복을 받아내는 대사건을 터뜨린다. 거부의 타킷이 다름 아닌 미국 구가라는 사실은 미국 온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자존심이 상한 미국시민은 데모에 나섰고, 방송국은 그녀의 노래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우리 속담은 하나도 틀리는 것이 없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꼴인데 코털만 건드려도 사자는 화를 내는 모양이다.
베트남전쟁에 지고 그토록 오랫동안 전쟁 후유증을 겪고도 지난해 10월 이후 걸프전 참전으로 쏠려 가는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 미국에 대한 반감은 다시 그래미상 수상거부로 나타난다. 33회의 전통을 쌓아온 그래미상에 사상 처음으로 수상을 거부한 사례가 되어 그래미상 권위는 급전지하로 떨어졌다.
시네드는 단호하다. 상업적 성공이 민감한 팝계에서 자꾸 삐딱한 이미지를 선보이다가 나중에 재정적 몰락을 가져오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진리를 희생시키는 것에 상당하는 돈뭉치는 있을 수 없다. 난 침묵하기보다는 차라리 굶어죽겠다”고 일갈한다.
트레이시 채프먼과 시네드 오코너는 이러한 저항적 자세로 미국을 철저히 괴롭히고 있다. 음악평론가들은 현재의 음악이 신선감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채프먼과 오코너류의 음악과 행위를 닮은 가수들이 속출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20대의 젊은 여성인 언제까지 이러한 저항과 변혁정신을 그대로 끌고 갈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팝계는 봅 딜런과 같이 초기에는 강성이었다가 나중에는 패배주의 또는 은둔 내지는 체제옹호로 돌아선 '훼절'의 사례를 많이 갖고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매스컴 공세라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밑바닥에 깔고 있는 미국의 제도권언론은 채프먼이나 오코너 같은 위험인물을 집요한 공세로 요리, 얼마든지 평범한 연예계 스타로 약화시켜 버릴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둘은 최근 2~3년간 미국언론에 위험수위에 달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지나치게 자주 활자화되어 적지 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단순한 화제성 매스컴 스타로 전락하지 않더라도 신문과 방송에의 지나친 등장은 큰물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희소성의 가치만 지니게 된다.
미국언론의 집요한 공세는 '주변인들의 반란'에 대한 대응방식을 암시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채프먼과 오코너같은 인물의 저항은 주변인들의 반란에 불과할 가능성이 있다.
주변인들의 반항은 프랑스의 정치학자인 모리스 뒤베르제의 명쾌한 지적처럼 동화와 조절이라는 두 개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오히려 기존 질서의 안정과 강화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대중가수들은 음반제작 등 활동전반에 걸쳐 많은 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쉽게 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미국의 대중가수들이 리얼리즘계열의 노래에 등을 돌리고 안정지향적인 사랑타령만 해대는 순종적 자세는 이와 같은 대중예술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이들의 자세가 현재까지는 믿음직하기 때문이다.
트레이시는 “인터뷰하는 것보다 노래쓰기를 더 잘할 것이다. 나의 노래쓰기란 사회적 사실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그 작업은 3중단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한다. 시네드는 앞으로 나올 3집 앨범에 대해 “새 음반은 내게는 더욱 해방적이고 사람들에게는 더욱 혼란스러운 형태가 될 것이다. 혼란 그리고 파괴는 선한 것이다”라며 기대해도 좋다는 듯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비록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옳다. 미리 실망하지 않기로 하자.
1997/12 임진모 (jjinmoo@izm.co.kr) / 이화여대 교지 *원문출처:*저항이 투영된 노래로 미국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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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ead O'connor - Nothing Compares 2 U
어쭙잖은 주장으로 생고집 피우는 어떤 이들보다 뚜렷한 신념과 용기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는 반골 여성 아티스트 *Sinéad O'connor의 노래 Nothing Compares 2 U. 이 곡은 프린스가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은퇴를 번복했지만, 그건 오히려 다행이다. 빡빡머리에도 아름다울 수 있는 여성은 흔치 않으리라. 간만에 들으니까 좋구나! 그녀가 반골이 된 이유에 50%는 공감하며…. *저항이 투영된 노래로 미국에 도전 / *youtube+Sin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