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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백두산 여행 후기

년 북경 올림픽 응원단으로 참여했다가 알게 된 병갑 형님께서 어느 날, 전화를 주셨습니다. '백두산 갈래?' 뜬금없는 소리에 잠시 당황했으나, 언젠가 한 번 가봐야 할 곳이라 생각했기에 기회다 싶어, 앞뒤 안 보고 O.K하고 입금부터 해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병갑 형님의 초등학교 동창생 아홉 명이 백두산 투어링을 떠나는 데, 제가 끼어든 셈이더군요. 다행히 작년에 뵈었던 병갑 형님 친구분도 계셨고, 다들 초등학생들처럼 순박하고 마음들 넓으셔서 덕분에 재미있고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특징은 쇼핑이나 다른 관광은 철저히 배제하고, 북녘땅이라 오를 수 없는 동파 코스만 빼고, 남파, 서파, 북파 코스를 올라 보는 것입니다. 백두산만 세 차례 오르내리는 것이지요. 물론 걸어서 트레킹하면 좋겠으나, 시간상으로 환경적으로 그럴 수 없어서 소형버스나 SUV를 타고 오르내리게 됩니다. 백두산 여행만 전담하는 여행사를 통해 일정을 잡고, 중국 장춘 공항에 내려 현지 가이드와 우리 일행 10명을 싣고 여행할 소형 버스를 만났습니다. 낡은 버스는 끔찍했습니다. 모양만 버스지, 너무 오래돼서 좌석의 쿠션이 전혀 없고 마치, 화물차 짐칸을 타고 비포장길을 달리는 그것과 다를 바 없었죠. 이 버스로 비포장길과 산길, 낡은 길을 7~8시간 달려가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길에도 공항이 있다고 하는데, 성수기에 여행사 측의 알 수 없는 이유로 부득이하게 이렇게 장시간 버스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추측에 3박 4일 일정에 시간 때우기용으로 끼워 넣은 것 아닌가 의심됩니다. 백두산은 이틀이면 충분히 오갈수 있어서 2박 3일로 충분할 일정을 억지로 부풀린 것 같더군요. 혹시, 백두산 가실 거라면 반드시 연길공항을 이용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장춘공항서 백두산까지는 너무 힘들고 멉니다. 말이 7~8시간이지 이게 전부가 아니라, 3박 4일 내내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기도 합니다.

점심 먹고 한낮에 장춘을 떠난 버스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목적지 송강하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비 때문에 축축하고 습한 숙소는 냄새도 심했고, 청결상태도 엉망이었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깊은 잠을 청할 수 없었고, 빗소리에 예정 기상 시간보다 일찍 눈을 떠버렸습니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나와 작은 소란 끝에 새롭게 바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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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버스에 몸을 싣고, 다시 장거리 버스여행에 나섭니다. 사방팔방 도로와 다리 공사 덕분에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겨우 백두산 남파 입구에 도착. 입구를 통해 들어가 다시 내선버스를 타고 달립니다. 말이 버스지, 오래전 쌍용에서 판매하던 이스타나 벤츠 버전이더군요. 차는 끝없이 달리고, 오르며 꾸불꾸불한 길을 돌고 돌아서 힘겹게 오릅니다. 길이 하늘에 다을 수록 장엄하고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어느덧, 우리가 탄 미니버스는 구름 속으로 주차해 버립니다. 구름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을 걸어 남파 쪽 천지 앞에 섭니다. 구름에 가린 천지는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바람이 구름을 실어 나릅니다. 그사이 아주 잠깐 천지가 수줍은 듯 살짝 웃음을 띱니다. 그 틈을 놓칠세라 너도나도 셔터 누르기에 바쁩니다. 구름이 완전히 걷히기를 빌며 기다리고 싶지만, 내려갈 시간입니다. 여행자 쉼터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압록강 협곡에 잠시 멈춰 섭니다. 바람과 비와 세월이 만들어낸 협곡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다시 구름을 가르며 멈춰선 버스를 내려 하늘까지 뻗은 듯 보이는 계단을 걸어 올라 우리의 목적지인 서파 천지에 오릅니다. 다행히 날씨가 점점 좋아집니다. 천지의 물 색깔까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잠시나마 맑은 날씨가 고맙습니다. 맑은 날씨와 구름과 하늘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려가지 않으면 돌아갈 버스가 없습니다. 아쉬움을 숨 속 깊이 들이쉬어 숨기며, 발길을 돌립니다. 마지막 셔틀버스를 타고 잠시 어느 협곡에 들렀다 달리는 버스 앞에는 저 멀리 저녁노을이 반겨주는 듯 붉은빛을 뽐냅니다. 내일 아침 북파를 오르고자, 우리가 탄 버스는 다시 장거리를 달립니다. 현지 가이드가 안내한 연변 어디 식당에서 연변식 소고기 요리를 먹었는데, 정말 안 먹고 말았어야 할 메뉴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현지 가이드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꼴이 되고 맙니다. 늦은 밤중 연변 어디 산장에 들어가 축축한 시트 위에서 잠듭니다.

첫날부터 임대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동안 계속 술을 마시고, 식당에서도 술을 나눕니다. 작년 경험을 살려 가능하면 과음하지 않으려 노력한 덕분에 조금씩 조절하며 마실 수 있었습니다. 중국 음식을 술 없이 먹기에 너무 기름진 것들이라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일도 있고, 이런 멋진 산에 와서 술 한 잔 마시지 않는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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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쯤 잠에서 깬 것 같은데, 밖은 훤합니다. 기다렸다 후다닥 아침을 챙겨 먹고 북파를 향해 출발합니다. 북파 쪽에는 장백폭포(우리식으로 비룡폭포라 불림)가 볼거리라고 합니다.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부르고, 비룡폭포를 장백폭포라 불러야 하는 현실이,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주말이라 비룡폭포 가는 길엔 중국인도 많고 한국인 관광객도 많습니다. 중국인은 어딜 가든 몹시 시끄럽군요. '그 입 다물라!' 해주고 싶을 만큼 소란스럽습니다. 화장실은 여기저기 응가가 잔뜩 쌓여있고, 심지어 화장실 문을 열어두고 큰일 보는 사람도 있더군요. 티코 크기만한 시골 삼발이 택시는 온갖 유명 차들을 흉내낸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달립니다. 대륙의 화장실, 대륙의 택시. 비룡폭포로 가는 직선코스 대신 우회하여 산책로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장엄한 비룡폭포 앞에서는 넋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소란스런 중국인 덕분에 금새 흥이 깨지고 맙니다. 비룡폭포에서 떨어져 흐르는 천지물을 마셔봅니다. 동네 약수터 물맛과는 다른 오묘하고 탄산수 처럼 조금 쌉쌀한 맛입니다. 쉽게 폭포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다, 근처 온천물로 익힌 달걀 판매점에서 계란을 사서 나눠 먹고, 북파에 오르고자 다시 이동. 북파로 오르는 SUV를 타려고 줄 선 사람들이 어마어마합니다. 우리 일행도 입장권을 사서 차례로 줄을 섭니다.

얼마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십의 중국인 무리가 우리 옆으로 끼어듭니다. 중국 어디 시골서 구경온 사람들인지 알 수 없지만, 추측에 관리인에게 돈 주고 새치기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몸으로 점점 밀어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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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여자들도 많은데 깔릴 위험이 느껴질 정도로 소리지르며 거세게 밀어댑니다. 새치기에 화나있던 터에 떠들며 밀기까지 하는 무리를 보고 큰소리로 화를 냈습니다. 욕설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보다 더 큰 소리로 이게 무슨 짓들이냐며, 사람이 다치면 어찌할 거냐고, 차례로 줄을 서라고 우리말로 소리치니, 잠시 그들에게 침묵이 흐릅니다. 낯선 언어로 떠들어 대는 모습에 놀란 듯 보였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관리소 우두머리 같은(진짜 영화나 만화에 나올법한 캐릭터) 중국인이 나타나 '꿔이 꿔이'하며 또 재촉합니다. 그 관리인에게 또 차례를 지키며 줄 서서 타도 될 텐데 왜 이러느냐고 우리말로 따지자, 제 눈을 피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다 자리를 뜹니다. 제가 소리친 이유를 모르시던 병갑 형님은 화내지 말라고 타이르십니다만, 밤에 이유를 알려드리니 이해하시더군요. 대륙의 무질서. 중국인의 무질서를 목격한 한국서 온 16살 중학생 보이스카우트 소년도 어이없다고 내려오는 차 안에서 말하더군요. 짜증스러운 마음이 남아있는 채로 북파에 올라서인지, 천지는 구름에 모습을 감춰 버렸습니다. 일행들이 가져온 소주와 인절미를 나누어 먹으며, 아쉬움을 달랩니다. 잠시 비도 뿌립니다. 기다려도 천지 모습이 보이지 않자,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내려오는 SUV 안에는 16살 한국 중학생 보이스카우트 소년이 탔습니다. 고구려 유적지 탐방을 위해 여행 중이라고 합니다. 산 아래로 내려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버스를 타고 달려 어느 고려식당에 내렸습니다. 반가운 한식에 모두 밥을 더 먹고 반찬을 더 먹고 국을 더 먹고 들쭉술을 더 마십니다. 시중하던 20살 풋풋한 조선족 아가씨들을 넋 놓고 바라봅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20살이면 화장하기 바쁜데, 그런 모습과 비교하면 너무 앳되고 풋풋해 보여서이었을까요? 대화는 잘 안 통했지만, 그녀들도 우리를 관심 있게 보고, 우리는 백두산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도백하에 들러 미인송을 보며 소화 시킬 겸, 닭싸움도 하고, 산책도 즐깁니다. 내일 귀항을 위해 장시간 달려 장춘으로 가야 합니다. 가는 길에 하늘이 맑아지니, 못 보고 온 북파의 천지가 아쉽습니다.

휴게소에서 산 막걸리로 목축이고, 저녁쯤 다른 휴게소에서 맥주로 목축이다 늦은 시간 장춘 어느 호텔에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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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라면 지긋지긋할 만큼 긴 여정입니다. 일행은 늦은 저녁을 먹으러 호텔 밖으로 나가고, 혼자 얼큰한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모처럼 뽀송뽀송한 침대라서일까요? 소주 한 모금씩 마시고 새벽 1시쯤 잠들었다 눈 뜹니다. 일요일인데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로 호텔 앞이 분주합니다. 엘리베이터에 보니, 이 호텔에 성룡 씨도 다녀간 모양입니다. 호텔 조식은 형편없습니다. 너무 짜고, 우유는 전지분유나 탈지분유 같고, 빵이나 주워 먹는 편이 낫겠더군요. 짐 정리를 마치고 장춘시내를 대충 둘러본 뒤, 공항으로 갑니다. 이제 버스기사와도 현지 가이드와도 작별 인사할 시간.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더 많이 들었을까요? 연변출신의 순박한 가이드는 티 나는 거짓말과 무능력으로 여행 내내 미움받아야 했습니다. 마음 열리지 못하고 이해심 부족한 것은 누구의 노력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시원하고 차가운 백두산 날씨를 더욱 그립게 만듭니다. 우리나라 어느 시골 공항처럼 한가하고 작은 장춘공항에서 우리를 태우고 떠날 비행기를 기다리며 말도 안 되게 맛없고 비싼 커피 한 잔 마십니다. 이륙하는가 싶더니, 기내식이 나오고 조종사의 거친 착륙은 승객들을 긴장시킵니다. 어느새 인천공항입니다. 아래 사진은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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