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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행복일까 불행일까

린시절, 집안일 돕는것이 너무 지겹고 귀찮아서 10대의 나이에 가출을 밥먹듯 하던 나와는 달리, 한동네에 사는 그녀석은 투정 한번없이 그 산더미 같은 집안일을 도우며 착실하고 선하게 살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부터는 다니는 학교가 서로 달라 자연스럽게 사이가 멀어져버린 녀석을 다시 만나게 된것은 군시절이다. 군에서 알게된 친구놈이 마침 이녀석과 고등학교 동창에 친한사이였던 터라 휴가 나온 어느날, 포장마차에 들러 잔뜩 술을 퍼마시고 이녀석의 집에가 셋이 함께 잠을 청하게 되엇다. 폭주로인해 늦으막한 아침에 눈을 떳을때 나를 가운데에 두고 양옆에서 깊은 잠에 빠진 두녀석이 보였고, 이상하게 내얼굴은 뻑뻑함이 느껴졌다. 눈꼽인가 하고 눈을 부비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와 세수를 하려고 문득 거울을 보고는 그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얼굴과 머리등에 이물질이 묻어서 굳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두녀석들이 양쪽에서 내 얼굴 쪽으로 이물질들을 토해놓은 것이엇다. 이를 발견한 이녀석의 동생이 닦아주기는 했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는 제거하지 못한 모양이다. 결국 머리카락이며 얼굴등 전반에 걸쳐서 이놈들의 이물질들이 다닥다닥 붙어 굳어 있었다. 훗날 얘기를 건내기전까지 그들은 이사실을 모르고 살앗고, 얼마후 우리집은 이사로 인해 그동네를 떠나게 되엇으며, 몇년이 지난 어느날 이녀석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녀석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단다. 친구놈과 함께 차를 타고 달려가 만났을때 녀석은 만삭의 아내를 둔 상태였고, 가벼운 인사만을 나누고 돌아와야 했다.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놈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친구놈이 건내는 이야기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엇는데.. 이녀석이 애 백일을 앞둔 일주일전, 시골 친구가 가게을 오픈했다며 다니러 오던차에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것이다. 한남동 순천양대병원 응급실에 갔을때, 이녀석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착하고 선하게만 살던 좋은놈이 어쩌다 이렇게 좋지 않은 일들만 생기는지! 이젠 자리도 잡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고 행복한 가정만 꾸리면 되는 안도의 시절이것만! 신은 이녀석에게 고생을 그만하라고 그런것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인지 하반신 마비라는 형벌같은 선물을 내리셨다. 녀석이 몇년간 병원에 있던중, 몇차례 더 병원에 방문했으나, 차마 녀석앞에서 긴대화를 나눌수는 없엇다. 녀석의 남은 삶에 줄수 있는 도움이나 해줄수 있는 것 따위는 내게 없엇다. 아무런 대화도 할수 없엇다. 몇년이 흘러 녀석은 퇴원을 했고, 구리시 어디서 부인과 살고 있다는 소식을 친구놈을 통해 간간이 들을때마다 느꼈던 것, 10여년 넘게 녀석을 수발하며 생계를 이끌어 가는 녀석의 부인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이다. 녀석은 장애를 얻으며 불행을 얻엇으나, 그보다 더 큰 부인의 사랑을 얻엇으니 다르게 보면 큰 행복을 얻은것이 아닐까? 그 녀석은 불행과 행복을 동시에 얻은 몇안되는 사람중에 한명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기억속에서만 녀석을 떠올릴뿐 녀석앞에 나타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좀더 세월이 흐른 어느날 서로 마주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사랑이 영원하고 좀더 행복해지기만을 마음속으로나마 기원할 뿐이다. 최근에 장애와 불행을 돌보며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부부들이 TV등에 등장할때마다 녀석의 얼굴이 떠오르고는 한다. 내 기억속에 그녀석은 아직도 어린시절 집안일을 묵묵히 돕고 주근깨가 가득한 선하고 착한 소년의 모습, 그것이다.

마음을 열지 못하며 사랑할수 없는 이유는 마음에 심한 장애를 입어서 그런것은 아닐까? 찰나의 사랑은 그 깊이를 논할수 없지만, 세월이 묻어나고 주름진 사랑은 그 깊이만큼 존경받아야 할것이리라. 사랑하는 사람이 손발이 잘려 나갔을때 그의 수족이 되어줄만큼 사랑이란 것은 헌신적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