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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냉면과 와인 - 20080122(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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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초저녁, 평양냉면과 와인이 너무 당겨서 무작정 지하철에 올랐다. 퇴근시간과 맞물려 우래옥이나 평양면옥, 필동면옥은 포기하고 5월쯤 이전한다는 한일관을 가볼까 하다 마음을 접고, 삼청동에서 와인이나 마시자는 마음으로 북촌동 골목을 걷는데, 허구한 날 다니던 그 길에 *북촌평양냉면이 있는 게 아닌가! 관심 있게 안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니, 모르고 다닌 것도 당연한 일인듯. 틈나면 한 번 가볼까 하던 차에 마침 제대로 찾은 셈. 저녁 식사 중인 손님들 틈에 앉아 평양냉면 하나를 주문하고 기다리니, 잠시 후 꽤 그럴싸한 냉면 한 그릇이 나온다. 육수를 먼저 들이켜보니 그저 그런 동치미국물 맛이지만 시원 냉랭한 맛이 깔끔하고, 육수보다는 부드럽고 쫄깃한 면발이 더 좋다. 제분업소를 운영하던 주인 솜씨니, 면발 하나는 특출나겠지. 우래옥이나, 평양면옥, 필동면옥들에서 먹던 고기육수가 아니라서 아쉽다. 평양냉면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와, 라끌레로 향했다. 이른 시간 한쪽에선 바퀴벌레 한 쌍이 한창 열애 중이다. 주인어른과 인사를 나누고 개인적 취향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미산 와인을 받아마신다. 산에 다니며 힘이 넘친 탓인지 몇 차례 코르크 마개를 부수니 주인께서 호통치신다. 때마침 10여 년 만에 뵙는 분도 나타나셨고, 와인 세 병쯤 비웠을 때는 후배 일행이 차를 몰고 방문했다. 덕분에 택시비 굳었다. 후배를 보니 7년 전이 떠오른다. 그 시절 동호회에서 이곳을 빌려 즐기던 기억이 새롭다. 화요일 저녁, 추운 날씨 덕분에 손님이 많지 않아 문 닫을 시간에 이르러 자리를 일어난다. 후배 차를 타고 우리 동네까지 달려 도가니탕집에서 도가니탕에 소주 한 병 비우고 떠나 보낸다. 술이 아쉬워 근처 카페에 들러 J&B RESERVE 한 병 마시는데, 홀로 심심하게 앉아 있다 건너편에 앉은 동네 건달들에게 술잔을 건내고 기억을 잃다. 독을 들이키고 긴 시간 동안 시체처럼 무의식의 세계를 떠돌다 깨니, 차갑지만 눈 부신 햇살이 융프라우나 티틀 꼭대기서 맞이한 햇볕을 생각나게 한다. 길거리 가게에서 갈아 마신 토마토 주스 한 잔은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어김없이 숨 쉬는구나. 뺨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에 또다시 살아 있음을 알아차리다, 문득 불타는 마음으로 영화 '색, 계'에서 본 자세를 시도하고 싶은 욕구가 피처럼 용솟음친다. 난 살아있어! 난 살아있다고! 일순간 빠삐용의 *스티브 맥퀸 얼굴이 떠오른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