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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조문(弔問)

이미지출처 : http://4444.tv/
은 밤 쌀쌀한 날씨. 피곤해 보이는 고모 말씀에 의하면, 근처 장례식장에 자리가 없어서 예까지 왔고, 시간당 2만 원씩 내야 한단다. 매형, 동생과 함께 국화를 올리고, 절하고 고숙께 인사 올렸다. 지난 설에 인사드렸던 고숙의 어머님께서 7년간 병환 끝에 먼 길 떠나셨다. 생전에 몇 차례 뵌 적 없어 정이 없지만, 내종형제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할머니께서 작고하시니, 깨달은 바 있는지, 부모님께 잘해야겠단다. 운전들 해야 하는 매형과 동생은 밥을 먹고, 나홀로 소주 한 병 반을 들이켰다. 깊이 잠들고 싶은 이유다. 친척 어르신들 반이상은 다시는 볼 수 없는 분들이 되셨고, 남아 계신 분들은 외로움과 싸우신다. 칠순 다된 숙부께서는 장례식장이나 병문안 갔다가 금세 돌아 나오신다. 지난 설에 고모할머님을 뵈러 갔을 때도 그랬다. 오래 있기를 꺼리시며 나가고 싶어 안달이셨다. 날 풀리면 낚시터에 다니며 잊으려 하실 테지. 조카들 수가 늘고 커가는 만큼, 어른들은 점점 지워져 간다. 혼자 마시는 소주는 쓴맛도 없다. 얇게 입었는데 추운 줄 모른다. 친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모두 떠나 보낸 고모는 몹시 지쳐 보인다. 시어머니 병간호하느라 보낸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드러나 안쓰럽다. 내종형제들이 앞으로 잘하겠지. 나고 떠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가볍다. 간혹 웃음도 보인다. 환상이나 기대 따위 안 한 지 오래다. 그냥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변화하고, 각성하며 사는 것뿐. 죽음은 덤덤하고 익숙하다. 어찌 이해해야 할까? 그냥 흐르는 분위기와 시간에 몸을 의지할 뿐 방도가 없다. 어릴 적 얼어 죽은 거지를 보았을 때 신기하고 낯설고, 자동차 사고로 죽은 사람이나, 약을 먹고 죽은 사람을 보던 호기심은 없다. 때로는 사람에게 수명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는 생각이다. 동물의 세계와 인간 사회가 닮았음에 웃음도 난다. 삭막하고 미련한 얘기지만, 여전히 인간은 종족 번식을 하며 지구를 지배하고자 사는 것 같다. 생명의 불꽃이 지더라도 이어지는 욕망과 탐욕의 끝은 어디에도 없는 듯. 그것이 마치 인류의 유산인양 본능적으로 행하며 사는 것이다. 줄이려 해도 줄이지 못하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 죽음 앞에서 이처럼 겸허해지는데, 돌아서면 또다시 꿈틀대는 탐욕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얻으려고 사는 것인지 모르나, 내일 아침 마주할 하루랑 악수하며 즐겁게 살자. 건강할 때 즐기고 웃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 아니고 무어겠는가! 웃자, 웃어 껄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