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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알콜 4.5도

짐 한달만에 세상속으로 다녀온 것 같다. 성묘외에 먼 외출이 없어 도심속에 들어가 숨을 쉰 기억이 없다. 집과 뒷산, 구멍가게만 어슬렁 거렸을뿐. 어제는 볼 일이 있어 인간세상에 나갔더니 도시는 낯설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사람들의 분주함마져 낯설어 한쪽 구석에서 책을 읽다 오후 3시경부터 가벼이 시작한 소주 한잔에 바르르 몸을 떨었다. 소화를 위해 거닐다 88년이후 첨으로 홍대정문을 관심갖고 바라보는데, 입구에 대형건물이 하나 들어서고 과거의 잔영은 사라진듯해 서운했다. 왜 도시적 건물들에 반감이 생기는지, 왜 적벽돌이나 흑벽돌이 올려진 건물들이 더 그립고, 사라져감에 아쉬워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나이탓인지 추억탓인지 아니면, 일종의 상실감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익숙하지 않은 변화다. 스치듯 지나는 거리는 과거와 시방이 교차되며 많은 이미지들이 오버랩되어 공중을 헤엄치듯 유영한다. 그속에는 낯익은 얼굴들도 함께 떠돈다. 어느 자리 어느 장소라도 그곳에 대한 기억에는 이유가 있고, 분명 잊혀지지 않는 무언가가 드리워져 있듯, 내게도 비슷한 이유로 어느곳, 어느 장소가 그리운 모양이다. 잠시 거리를 거닐며 포만감을 잠재웠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다. 옛 먹자골목거리-지금은 주차장골목이자, 의류점들로 가득찬 그곳을 지나다 어느 째즈바에서 흘러 나오는 낯익은 째즈 피아노 선율에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진다. 잠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모습을 흘리듯 스쳐보며,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뒤로 하고 1년여만에 들어간 'BAR다'. 너무 일찍 찾거나 기회가 닿지 않거나 하는 이유로 다시 이곳을 찾은게 얼마만인지. 투박한 인테리어와 적당한 세월의 흔적 그리고, 싸구려 맥주와 냄새나는 치즈, 남미음악. 좁은 화장실. 촘촘한 의자와 테이블. 그런 것들이 이집에 대한 기억이랄까? 요새는 다니는 어느 곳이건 그곳에 대한 작은 것들조차 기억속에 담아진다. 싸구려 맥주를 마시다 가져간 CD를 틀어달라고 부탁하고 오랫만에 함께 듣게 된 브라질 음악은 막 손님들로 들끓고 테이블이 모자라 손님들이 더이상 들어 올수 없을때까지 볼륨이 줄여지지 않았다. 주인이나 손님들도 잘 어울리는 듯한 음악에 적잖이 귀기울이는 듯 몽환에 잠시 사로잡혀 맥주를 비우다 자리를 일어났다. 크래커와 치즈는 이미 접시를 비운채였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볼록해져가는 아랫배를 부여잡고 새벽까지 이어져 버린다. 과도하게 부담되는 술값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취할수 있는 노하우와 지폐몇장으로 해결되는 싸구려 술자리였지만, 누릴수 있는 여유만큼은 모두 누린 밤처럼 새벽이 찾아와 노크한다. 조만간 닥칠 쓰림의 고통과 배출의 고역을 겪을 것을 알지만, 그 순간 취함은 머릿속 깊이 숨겨진 뇌세포들에게 자유를 준것과 같은 알싸한 밤이리라. 마치 90년대초반 지금의 신촌전철역 주변 백화점이 생기기전 그시절에 다녀 온듯 추억에 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