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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직메 룬둡의 편지

안녕, 나의 친구


가 어떻게 그 경험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네. 그 여행을 이해하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티베트인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넘어 보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그 여행을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을 만들면 좋겠단 생각을 한거야. 가령 중국 군인에게 잡히면 감옥에 갈 게 뻔하니 낮에는 쥐 죽은 듯이 숨어서 잠자야 해. 잠이 쉽게 들 리 없어. 온몸은 얼어붙고 온갖 악몽에 시달리지.


리 그룹은 남자들로만 구성돼 있었는데, 내가 가장 어렸어. 걸으면서 난 천천히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 고지대에서 단련된 티베트인들의 허파로도 히말라야 고갯길의 희박한 산소는 견디기 어려워. 심장이 굳어 가는 것처럼 가슴이 뻐근해지는데 그 고통을 글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얼굴은 단단하게 얼어 가고, 걷는 동안 다리 감각을 전혀 느낄 수 없어. 산소가 부족하면 머릿속이 흐리멍텅해져 똑바로 사고할 수가 없게 돼. 허리까지 찬 눈을 헤집고 앞으로 전진하는데, 바람은 또 왜 그렇게 세차게 얼굴을 때리는지. 낮이 되면 태양은 또 얼마나 눈부신데, 이때 눈을 보호할 장비가 없으면 시력을 잃고 말지.


중에 내 나이 또래 소녀의 시체를 봤어. 눈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는데, 꼭 금방 죽은 것처럼 보였어. 하지만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지금도 그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면 말할 수 없이 괴로워. 그날 밤 높은 고개를 또 하나 넘어야 했는데, 몸이 꽁꽁 얼어서 뻣뻣하게 굳었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점점 더 자주 주저앉아서 쉬어야 했지. 한번 쉬었다 일어날 때마다 다시 한 걸음 떼어 놓기가 너무 고통스러웠어.


침내 식량이 떨어지는 날이 오고야 말았어. 아직 국경에 닿지 못했는데 말이지. 나는 온몸이 차갑게 식으며 죽어 가는 걸 느꼈지. 아마 음식이 있었다고 해도 식욕조차 없었을 거야. 가끔 일행 중 누군가가 내 입에 눈을 뭉쳐 넣어 주었어. 먹을 거라곤 그게 전부였어.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도 나는 걷고 또 걸었어. 오로지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데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썼지. 이렇게 죽어 가는구나. 나는 눈 속에 파묻혀 있던 소녀를 생각하며 울었어. 세상에 지옥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 마. 내게는 그 여행이 바로 지옥이엇으니까.


좋게도 나는 살아서 국경을 넘을 수 있었어. 살아남은 사람들은 알지. 우리의 자유가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엇다는 걸 말이야. 이 글을 쓰려니 다시 그때가 생각나 몹시 슬퍼졌어. 우리가 자유를 위해 어떤 대가를 바치는지 안다면 세상 시선이 좀 더 티베트를 주목하게 될까? 왜 우리가 그런 희생을 치르며 여행하는지 이해해 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것만이 내가 지금 살아가는 희망이니까.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중에서 - 직메 룬둡의 편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집과 따뜻한 밥과 물로 배채울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고맙게 생각한다. 어제 얻어 먹은 잘 익은 홍시도 고맙고, 좀전에 까먹은 귤도 고맙고, 숨 쉴 여유와 걸을 수 있는 두다리, 내 팔과 몸이 아프지 않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잠시 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괴롭고 힘들엇을 저 청년의 편지를 읽고나니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다시 한번 늘 고맙다, 세상아!